Page 50 - 월간 통도 2021년 1월호 (Vol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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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TONGDO                                     문학 향기




          에게는 가장 간절한 소망이다. 토지신을 모신 가람각은 그래서 백성

          들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이었다. 지금도 토지신의 위력은 대단하다.
          서울 아파트 한 채가 20억, 30억 원으로 치솟고 부산 아파트도 10억 원

          을 상회한다. 집은 부의 상징이다. 그래서인지 가람각 예물로 올린 쌀
          포대에는 아파트 매매, 아파트 매입 등의 발원이 많다.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왔을 때, 이미 도교는 토속신앙과 융화를 이루
          고 있었다. 불교는 이렇게 융화된 토속신앙을 수용했다. 전해 오는 이

          야기에 따르면, 가람각 도교풍의 탱화 앞에 대흑천大黑天의 나무 조각

          상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섬기는 칠복신 가운데 재물
          의 신이 대흑천이다. 이 때문에 통도사 가람각에 이 조각상이 놓인 것

          이 부당하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조각상이 몽고의 침

          략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명이 좀 더 사실에 부합하는 것 같다. 몽고의
          쿠빌라이가 중원을 차지하고 중국을 통일하며 용맹을 떨친 그 저변에

          는 그들의 수호신인 대흑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흑천은 파
          괴를 전담하는 신이었고 전투를 관장하는 신이었지만, 인도나 중국에

          서 유래된 신으로 금전운과 사업운 등을 주관하는, 불교에서는 재복

          신財福神으로 여겨진다. 일본의 대흑천은 바로 이 신이 현지화된 것이
          다. 즉 통도사에 있었던 대흑천 조각상은 일본이 아니라 몽고에서 유

          래된 것으로, 몽고 침략의 흔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포대화상의 이미지가 많았던 대흑천 조각상은 가람각에 지금은 없다.

          긴 수염의 얼굴 검은 토지신만이, 신을 엄호하는 신중들이 황금의 칼

          을 들고 지키고 있다. 건강하여 장수를 누리는 노인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많은 보살들은 자신의 건강은 물론 자손

          들의 강녕을 비는 토속신을 섬기는 것이다. 그리고 외벽에 있었다는

          붉은 말의 벽화도 지금은 없다. 다만 1987년 통도사성보박물관 발행
          의 『한국의 명찰 통도사』에서 흑백 사진 한 장으로 이 흔적을 볼 수 있

          을 따름이다. 언젠가 다시 중건될 때, 이 모든 것이 온전히 다시 복원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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