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월간 통도 2021년 1월호 (Vol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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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향기
나이가 들면서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
람들을 위한 간절함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제한된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때, 우리는 기도를 한다. 인간은 약한
존재다. 가득 쌓인 번뇌와 불안을 조금씩 풀고, 새로운 힘을 충전하기
위한 믿음의 처소가 필요하다.
미륵불의 시대를 기다리고 내세의 복락을 간구하며 저승세계의 캄
캄함을 위무하는 예불도 중요하지만, 당장 지금 여기의 간구가 우리
에는 먼저이다. 보이는 세계, 만지며 가지는 세계, 먹으면서 즐기고 편
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세계에서, 무소유의 절제된 삶은 우리에게 쉽
게 허락되지 않는다.
통도사에는 다른 절에서는 보기 드문 절의 영역을 수호하는 가람신
을 모시는 가람각이 있다. 가람이란 승려들이 사는 사찰을 의미한다.
간절하면
가람각 안의 탱화에는 토지와 가람을 지키는 토지 대신인 가람신이
이루어지리 검은 옷에 긴 회색 수염을 단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통도사 일
라 주문에서 보면 가람각은 고목의 느티나무와 백일홍 가지에 가려 잘
정영자
보이지 않는다. 왼쪽 범종각으로 방향을 튼 천왕문 남동쪽에 숨은 듯
자리 잡고 있다. 법당 가운데 가장 작은 4면의 단칸 법당으로 겨우 2평
이 되지 않는 법당이 천왕문의 옆 담장 안에 있다. 천왕문 뒤쪽으로 조
금 밀려난 공간의 담 안에 있기는 하지만 천왕문보다는 바깥에 위치
한다. 부처님 공간 안에 수용은 하지만, 중심으로 당겨 놓을 수 없는 토
속신앙과 불교의 융합에 의한 절묘한 사찰 배치법을 읽을 수 있다.
가람각은 1706년에 건립된 이래 도량을 지키는 문지기의 역할을 하
고 있다. 사천왕의 역할과는 달리 백성들에게 친근한 예불 대상이다.
통도사 전체 구조의 뼈대를 이루는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의 배열에
서, 맨 끝자락에 위치한 법당이다. 이처럼 가람각은 통도사 예불 공간
의 제일 아래쪽에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백성들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땅에 곡식이 풍성하여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은,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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