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월간 통도 2021년 1월호 (Vol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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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길목 같다는 느낌을 표현하였다. 지금은 차                          이 밖에도 한글학자 김윤경(金允經,1894~1969)이 1932

          량 운행이 금지된 ‘무풍한송로’를 따라 통도사 입구                        년 9월 8일자 동아일보에 쓴 ‘한글순례’와 조선지리
          (부도전 인근)까지 이동하는 과정으로 내용은 다음과                        학회장을 지낸 김도태(金道泰, 1891~1956)가 1940년 5월

          같다. “통도사를 찾아들자 왼편 차창 밖으로 보이는                        19일자 동아일보에 쓴 ‘지상紙上 수학여행 - 경부선
          널찍하고 큼직하고 평탄平坦한 반석磐石을 넘어 흘                          편’에도 통도사 이야기가 나온다. 자장율사 창건 후

          러내리는 시내물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며 노                            유구한 역사를 이어 오고 있는 통도사는 일제강점기

          삼고삼老杉古衫이 우거진 사이로 하나씩 둘씩 흩                           에도 아름다운 풍광과 넉넉한 사격으로 조선 제일의
          어지는 어떤 낙엽을 스처 평평한 길을 더 들어 들                         불찰佛刹로 명성이 높았다. 해인사, 범어사와 더불어

                   어가는 재미란 과연 진회塵懷를 떠나 지경地境을                  조선 3대사大寺인 통도사의 명성과 위상이 허언이 아
          찾은 듯 수석水石, 삼림森林, 계곡溪谷의 모든 아름                        님을 김윤경은 동아일보에서 증언하고 있다. “문루門
          다운 경개景槪가 유요幽遙하야 순례인의 기백을 저                          樓좌우에 ‘國之大刹국지대찰佛之宗家불지종가라 함은

          윽이 황홀게 하고도 남음이 오히려 많터이다.”                           절의 내용을 한번 살피어 본 뒤에 과장이 아님을 믿

           한편 1900년대를 대표하는 문인인 육당六堂최남선                        게 한다.”
          (崔南善, 1890~1957)은 1928년 6월 8일자 동아일보에 게

          재한 ‘조선유람가朝鮮遊覽歌’의 한 부분에서 통도사를                           1939년 11월 10일자 동아일보
                                                                 ‘소문만복笑門萬福_ 군수郡守와 승僧’
          표현하였다. “양산의 통도사는 고찰古刹에 대찰大刹,

          석가불 사리 모신 계단戒壇이 거룩하다.”는 내용으로                           조선시대 관리를 빗대 일제강점기 사회현실을 풍자하고
                                                                 통도사 스님의 지혜와 기개를 엿볼 수 있는 유머이다.
          통도사의 역사성과 종교성을 잘 드러내었다.
                                                                  억불숭유의 조선시대. 어느 날 양산군수에게 통도사
                                                                 의 젊은 스님이 찾아와 “소승小僧 문안이요.”라며 얼굴

                                                                 이 부딪힐 정도로 가까이서 절을 했다. 깜짝 놀란 군수
                                                                 가 “다음부터는 절을 멀찍이서 하라.”고 주문했다. 스님
                                                                 은 “다음부터는 그리하겠다.”고 답했다. 그 후에도 서너
                                                                 차례 찾아왔는데 군수에게 절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군
                                                                 수가 “요새는 오면 인사를 안 하느냐?”고 묻자 스님은
                                                                 “일전에 사또께서 멀찍이서 절을 하라기에 삼문(三門, 관
                                                                 청 앞에 세운 문) 밖에서 절하고 들어왔다.”고 답했다.






                                                                이성수 기자는
                                                                동국대 고전문학 박사과정 수료. 불교신문 편집국장, 한국불교기자협회장, 동명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일제강점기 불교자료를 발굴 보도하여 불교언론문화상과 한국
             80년 전 통도사 사리탑. 1940년 5월 1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이다.        불교기자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불교신문 기획특집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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