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월간 통도 2021년 1월호 (Vol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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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통도사 경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아                         스님이 수행하는 ‘동남東南의 저명著名한 대찰’이라

          름답다. 영축산에서 발원해 통도사 경내를 지나 양                          고 하였다. 영각靈閣에는 석가모니불과 자장慈藏 스
          산을 거쳐 낙동강까지 이어지는 양산천과 그 주변의                          님의 가사를 보존하고 있었으며, 금강계단에는 부처

          기암괴석, 그리고 통도사를 보듬은 소나무 숲은 전                          님 정골頂骨을 모신 사리탑이 불자의 귀의처가 되고
          국 제일의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1925년 4월에 발간                      있었다. 이와 더불어 산자락에는 12암자가 있는 등

          된 종합잡지 「개벽開闢」 제58호에 실린 ‘남국행南國行’                      영축산 통도사는 ‘처처處處의 경개景槪가 뛰어나다’

          에는 1920년대 중반 통도사의 빼어난 경치가 생생하                        고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다. “누구나 여기서는 청정법계淸淨法界의 도량을 연                          1934년 1월 2일자 동아일보와 1936년 11월 27일자

          상하고 경건한 생각을 가지리라. 창울蒼鬱한 송림松                          조선일보에도 당시 통도사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林사이로 수리數里를 완보(緩步, 느리게 걸음)하는 동안                       내용이 실렸다. 동아일보는 “금벽金碧찬란한 전당탑
          은 그럴 듯하게 신사神思의 쇄락(灑落, 몸과 마음이 상쾌하                     루殿堂塔樓는 울울한 산림 속에서 그 빛을 자랑한다.”

          고 깨끗함)을 느끼였다.”                                       면서 “경내에 사요舍寮가 12, 방전房殿이 35, 승려 184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통도사를 찾아가는 진                           명에 1년 추수가 3천 석”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입로의 울창한 소나무 숲을 천천히 걷다 보면 몸과                          는 “경내 12사전寺殿36방전은 조선에서 유(類, 비유) 없

          마음이 상쾌해졌다는 필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                           는 고웅古雄의 건물”이라고 하였다. 이어 “추수秋收

          져 온다. 하지만 그 무렵 통도사 입구(지금의 부도전 인                      4000여 석으로 630명의 승려가 거주하고 있으며,
          근)에 자리한 큰 규모의 술집과 그곳에서 풍기는 고                         전全 면적이 525평, 산림 면적 491만여 평, 경작지

          기 냄새가 마치 경성의 저잣거리와 다름없다는 불편                          면적 31만 7000여 평, 대지 면적 1만 9000평”이라
          한 마음도 표현했다. 당시에는 지금의 ‘무풍한송로’                         고 밝혀 그 무렵 대찰大刹 통도사를 설명하고 있

          가 끝나는 지점에 사하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1980                        다. 통도사 전경全景과 주지 경봉鏡峰 스님의 사진도
          년대 이후 현 방장 성파 스님을 비롯한 역대 주지 스                        실었다.

          님들이 꾸준히 정비하여 식당과 여관 등을 산문山門

          밖으로 이전시켜 지금은 청정도량의 모습으로 바뀌
          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서 밝힌 대로 일제강점기 통도사의 사격寺格은
          조선 제일이었다. 1923년 6월 6일자 조선일보는 당시

          규모와 스님들의 숫자를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팔
                                                               1936년 11월 27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도판八道版경상도慶尙道’라는 제목의 기사인데, 통도                          당시 통도사 주지 경봉 스님. 세수 45세였다.
          사가 300여 칸의 대가람大伽藍으로 400~500여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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