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월간 축산보림 2025년 4월호 (Vol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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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보사補寺를 했던 시주자 명단을 기록한 명문이 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야외 전
시장에 있는 1911년 금강계단 시주질施主秩이 그것이다. 구하 스님을 비롯한 통도사 스님,
각 지역의 시주자, 의친왕까지 수백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당시 해인사의 박보담 스님
이 시주한 괘불석주[掛佛石]와 괘등석掛燈石이 금강계단 주변에 남아 있다. 금강계단(사리
탑) 주변 석등에도 시주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공덕을 오래 기억하기 위함이다.
통도사 유일의 마애불인 ‘통도사 자장암 마애아미타 삼존불’에도 시주질이 새겨져 있다.
고종 즉위 33년인 1896년 7월에 화주 고산 정일과 시주자 김익래・김홍조・정태섭
・이선형・박한순・장운원의 이름을 새겼다. 마애불은 불화의 윤곽선을 따라 새긴 듯
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화주 고산 스님은 근대 통도사의 주지와 통도사 명신학교 설립,
금강계단 중건 등에 관계 되어 있다. 김홍조는 울산 사람으로 박영효의 후견인 역할을
하였고, 경남은행과 경남신문 사장을 역임하였다. 장운원은 독립운동가 장건상의 부친
이다. 자장암 금와보살의 석함을 시주한 기록도 있다. 1916년 8월 고산 스님의 화주
로, 이원만화李圓滿花 보살에 의해 만들어졌다.
수조와 다리를 만든 공덕을 기리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공덕은 소중한 것이다. 통도사 관음전 옆 수조에는 무오갑
계에서 광무 9년(1905)에 시주하였다고 새겨져 있다. 1935년 제작된 취운암 수조는
‘석함石函 2좌, 시주 김성민金性玟, 소화 10년 3월일 입立, 감독 신동백辛東百’이라 새겨져 있
다.
또 공덕 중에 최고는 이곳과 저곳을 이어 주는 다리놓기이다. 근대에 그려진 「통도사
전경도」에도 지금의 무풍교, 삼성반월교, 일승교 자리에 다리가 그려져 있다. 이 세 개
의 다리 건립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무풍교석축기증비문’(1922)에 따르면, 무오
갑계원, 갑자갑계, 경오갑계원, 종계 스님, 서청 담당 스님, 통도사 스님 등이 합심하여
당시의 금액으로 1,650원을 모아 무풍교 석축을 쌓은 것으로 되어 있다. 준공 시기는
1922년 9월이며 김구하 주지 스님에 의해 세워졌다.
1937년 일주문 앞 하천의 반야교(로 추정되는) 자리에 경봉 스님 주도로 삼성반월교
가 건립되었다. 경봉 스님은 아들 다리를 낫게 하고자 한 운산雲山 김치수의 말을 듣고,
계곡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많은 사람의 다리 노릇이 더 큰 공덕이라 일깨웠다. 삼성
반월교三星半月橋는 인천의 김치수 3천 원, 천포담 2백 원, 서청계 1백 원, 화순의 주태현
20원, 통도사 1천3백 원 총 4,620원으로 석수장이 나카무라 히데오(中村秀雄)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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