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월간 축산보림 2025년 4월호 (Vol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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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름이 새겨진 통도사 이름바위
현재 통도사의 130여 개 바위에 약 2천 명에 가까운 이름이 새겨져 있
다. 선자바위에는 무려 370여 명의 이름이 있다. 새긴 시기는 1680년대
부터 1969년까지이다. 대한제국(1897)부터 일제강점기 인물 이름이 가
장 많다. 이름바위에는 통도사 인근 지역의 관료 368명의 이름이 있다.
양산의 관료가 65명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부산 동래이다. 암행어사
는 8명이다. 유명한 어사 박문수는 관찰사로 공덕비에 새겨져 있다. 특
이하게 기생의 이름이 77명이나 있다. 또 궁궐의 내시 이름 18명이 새
겨져 있다. 통도사가 경승지임과 동시에 왕실의 원당이었기 때문이리
라. 이름바위에는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이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통도
사의 역사가 더욱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새긴 차왜 접위관들
통도사 이름바위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남산 사자목 5층 석탑 주변에 있다. 일본 사
신인 차왜差倭를 영접한 관료들이다. 당시 동래부사는 차왜 업무 총괄 책임자였다. 그
는 차왜가 오면 대마도 사신과 일본 본토 사신을 구분하여 한양에 알렸다. 조정에서는
대마도 사신이면 지방 관료를 향접위관鄕接慰官으로, 일본 본토 사신이면 중앙 관료를 경
접위관京接慰官으로 파견하여 차왜를 대접하였다. 임란 이후 차왜들은 한양에 갈 수 없어
모든 일은 동래부사 관장 아래에 진행되었다.
경신년(1680, 숙종 6) 7월, 동래부사 조세환 때에 일본 대마도 영주의 차왜를 영접하
기 위해 향접위관으로 울산부사 김수오가 임명되었다. 5층 석탑 주변 바위에 경주부
윤, 동래부사, 울산부사, 부산첨사, 양산군수, 언양현감 등의 이름을 1680년 7월 18일
에 새겼다. 그런데 1680년 9월에 다시 일본 본토 차왜가 와서 경접위관으로 병조정랑
이제가 임명되어 접대를 담당하였다. 5층 석탑 앞쪽의 선 바위에 이제를 비롯한 동래
부사, 울산부사, 양산군수 등의 이름을 1680년 12월 22일에 새겼다. 새김 글자는 전
문 석수장이의 솜씨는 아니라서 다소 투박하다.
이름바위의 내용은 역사서의 내용보다 더 풍부하다. 공식적으로 차왜를 영접한 접위
관이 당시 인근 지역 관료들과 함께 통도사를 방문하였다. 동래 인근 지역의 지방 수령들
이 차왜 접대 경비인 지대支待를 부담했기 때문에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통도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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