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월간 축산보림 2025년 4월호 (Vol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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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쓴 「설송 대사 비문」에 따르면 서산 대사의 문도는 유정惟政 → 응상應祥 →
쌍언雙彦 → 석제釋霽로 이어진 ‘교파敎派’와 언기彦機 → 의심義諶 → 설제雪霽 →
지안志安으로 계승된 ‘선파禪派’로 나눠진다. 설송 대사는 처음 석제 스님을
스승으로 삼았고 나중에는 지안 스님에게 배웠는데 두 분 모두 자신의 법을
설송 대사에게 전했다. 설송 대사가 ‘선파’와 ‘교파’를 하나로 아울렀다. 이
것이 ‘게송’에 압축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용직(李容直, 1824-?)이 짓고 안효필安孝弼이 글씨를 썼으며 정효근鄭孝根이
비신 상단부의 제액을 전자로 쓴 「화엄종주華嚴宗主 우담雨潭 대사 비문」(1879
년 비 건립)의 ‘게송’ 역시 눈에 띈다. 「비문」에 의하면 1831년에 태어나
1877년에 입적한 우담 대사는 13세에 “간절한 마음으로 금강산 깊은 곳에
가 포운 윤경布雲閏褧 스님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다음 해에 출가”했다. 25세
에 법문을 시작했는데 학도들이 사슴 떼처럼 모여들었다. 47세 되던 정축
년에 대중을 물리치고 ‘흙을 모아 만든 토지신에게 제사 지낸[結土社禩 ]’ 뒤
20여 일 지나 입적했다. 세수는 47세, 법랍은 34세였다. 우담 대사의 일생
을 이용직은 게송으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靈擬月慧, 신령스러움은 달빛 같은 지혜에 비견되고
道與山高. 깨달음은 산처럼 높도다.
有鏤片石, 빗돌에 행장을 새기노니
不枵千秋.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
근현대 시기 통도사에서 수행했던 스님들의 이력을 새긴 ‘비’들도 ‘비림’에
적지 않다. 경봉(鏡鋒, 1892-1982) 스님이 1965년에 쓴 「성해당聖海堂 대종
사 비문」, 운허(耘虛, 1892-1980) 스님이 1972년에 쓴 「홍경당弘經堂 대선
사 비문」, 벽안(碧眼, 1901-1988) 스님이 1965년 쓴 「구하당九河堂 대종사
비문」, 월하(月下, 1915-2003) 스님이 1982년에 쓴 「남산종南山宗 해담海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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