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월간 축산보림 2025년 3월호 (Vol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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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건(1687-1760)의 이 시는 불지를 출발하여 대둔사로 가는 길에 지은 구호口號로서

               기이한 경관과 험한 길을 가면서 느낀 심회를 드러내고 있다. 수련에서 기이하기 그지
               없는 층진 산의 모습을 개관한 뒤, 함련에서는 위태로운 비탈을 밟을 때의 두려움과 높

               은 바위에 오른 뒤의 탁 트인 경관에서 오는 상쾌한 느낌을 담아내고 있다. 경련에서는

               아득한 구름 속의 문은 하늘 세계로 통하는 듯하고 돌 사잇길을 돌아드니 인간 세상과
               절연된 듯한 느낌이 듦을 표현한 뒤, 마지막 미련에서는 산속에 들어와 머문 사흘 동안

               에 속된 생각이 없어져서 만나는 스님과 나누는 선담禪談에 돌아갈 줄을 모르는 시인의

               정황을 보여 주고 있다.



                     깎아지른 돌 비탈을 더위잡고 올라 그윽한 곳을 찾다가

                     인가의 연기를 굽어보며 깊지 않음을 걱정하네.
                     옛 부처는 거칠고 썰렁하여 바위로 집을 삼고

                     조화옹은 신령하고 괴이하여 물에서 황금이 생기게 하네.
                     위태로운 꼭대기가 바로 하늘을 떠받치는 형세를 짓는데

                     높은 곳에서는 오로지 속세와 인연을 끊으려는 마음을 품네.

                     어떻게 하면 속세의 너저분함을 다 없애고
                     이 사이에 청아하게 앉아 세월을 보낼 수 있으랴?

                     - 남경희, 「성불암에서 쉬고 금수굴을 관람하다(憩成佛庵 觀金水窟)」



               1792년 겨울 원적산을 유람한 남경희(1758-1812)의 이 시는 유람 중 성불암에서 쉬

               고 금수굴을 관람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수련에서 깎아지른 듯 험한 돌 비탈을 올라
               가서 그윽한 불지를 찾다가 막상 불지에 올라 멀리 바라보이는 인가의 연기를 굽어보

               면서 오히려 더 깊은 산속이 아님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준 뒤, 함련에서 거칠고 썰

               렁한 부처는 바위로 집을 삼고 신령하고 괴이한 조화옹은 물에서 황금이 생기게 한다
               고 하여 불지에서 느낀 감상을 담고 있다.

               경련에서는 불지 뒤편의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바위의 위세에 놀라면서 이 높은 곳에

               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싶은 마음이 생겨남을 고백하고 있다. 미련에서는 청정한 세계
               에 들어온 만큼 너저분한 속세의 때를 벗어 버리고 이곳에서 청아하게 세월을 보내기

               를 바라는 희원希願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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