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월간 축산보림 2025년 2월호 (Vol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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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전은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후 곧바로 수많은 불자들의 문수기
도처로서 중요한 신앙의 공간으로서 자리하고 있다.
자리를 지키는 존재, 가람각과 국사당
우리 민간신앙에서는 토지신, 즉 토지를 지키고 그 공간을 수호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불교가 민간신앙과 융합되면서 이러한 토지신
이 ‘가람신’의 형태로 모셔지게 되는데, 가람신을 모신 전각이 가람
각이다. 가람신은 가람을 수호하는 중책을 맡고 있지만 원래 불교의
신앙 대상은 아니기 때문에 전각의 위계상으로는 가장 낮은 곳이기
도 하다. 그래서 천왕문보다도 조금 바깥쪽에 위치한다. 지금은 담장
이 둘러싸고 있어 모두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속과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람각 옆면에는 말 그
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 말은 토지신이 말을 타고 다니며 도량을 옹
호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경내는 아니지만 통도사를 지키는 신은 인근 지산리에도 있다. 지산
리의 국사당은 영축산 아랫마을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한다. 원래는 통
도사 스님들이 매년 이곳에서 재를 지내며 통도사를 비롯한 영축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평온하기를 발원했다. 가람을 수호하기 위해 가
람각을 세웠다면 보다 확장해 마을 사람들까지 아우르는 보호를 발
원하고자 국사당을 건립한 것이다. 현재는 마을 사람들이 매년 9월 9
일 재를 지내며 마을의 안정을 기원한다.
사찰의 건축은 굉장히 엄격한 규칙을 따른다. 물론 지역의 특색과 지
형에 따라 유연한 구조를 띠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건축물은
그 의미와 성격에 따라 위계가 정해지고 위치가 확정된다. 어느 하나
가벼이 지은 곳이 없다는 뜻이다. 때로는 엄격한 위계에 따라 전각을
건립하되 때로는 민간신앙을 흡수하며 새로운 형태의 건축을 제안하
기도 한다. 이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유형의 세계
에 구현하고자 했던 옛 스님들의 지혜로운 안목이 만들어 낸 모습이
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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