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월간 통도 2021년 1월호 (Vol 470)
P. 9
구하 스님의 외호하에 한용운 스님이 통도사에 주석한 인연은 유명하다. “그 당시 일본
주재소가 통도사 안에 있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도 구하 스님은 한용운 스님을 강사로
두고 강원 학인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또 안양암에서 불교대전을 집필할 수 있도록 지
지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용운 스님의 독립사상이나 정신이 당연히 강원 스님들에게
전수되었겠지요. 하지만 일본 순사들의 눈이 얼마나 매서웠던지, 한용운 스님이 스스로
대중에게 짐이 될 수 없다며 통도사를 떠나게 됩니다. 후에 어떤 분이 얘기하기를, 방학
때 구하 스님께서 한용운 스님께 인사드리라고 봉투를 두 장 전달했답니다. 그래서 봉투
를 받아 한용운 스님을 찾아뵈었더니, 봉투 하나에는 돈이 들어 있고 또 하나에는 편지글
이 있었는데, 돌돌 말려 있는 백지 편지를 읽으시더니 스님이 씨익 웃으셨답니다. 아무것
도 적혀 있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통도사를 떠나시고도 두 분 사이에 깊은 교류가 있었다
는 뜻입니다.”
2021년, 개화기를 한참 지난 시대에 스님은 지금이야말로 ‘개화’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
조하셨다. 국가도 위기고, 불교도 위기다. 하지만 억불숭유의 시대에도 덕암당 혜경 스님
은 지역紙役을 혁파했고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동인 스님은 개화사상을 일으켰고 한용운
스님은 독립운동으로 호국불교를 실천했다. 또한 구하 스님은 혁신적인 사고방식으로 계
몽에 앞장섰다. 어두운 시대의 위기에서도 스님들은 지혜로운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했
다. 신축년 새해, 방장 스님께서 스님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은 앞선 세대의 모습에서
오늘의 해답이 있음을 드러내신 것이다. “스님들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학자들의 몫입니
다. 다만 후학으로서 앞선 시대를 살아오셨던 스님들의 밝은 정신과 사상을 배우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밤하늘의 별빛이 수천 년 전 빛의 흔적이듯, 아득한 망망대해 속에서 과거의 빛을 통해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걸, 방장 스님은 우리에게 일러 주셨다.
스님은 지금이야말로
‘개화’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