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

보물 제74호 통도사에서 약2km 떨어진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 35번국도 도로변에 서 있다. 통도사를 중심으로 사방 12곳에 세워놓은 장생표의 하나로, 절의 동남쪽 약 4㎞지점에 거친 자연석면 그대로 서있다. 이 절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시이며, 국장생이라는 명칭은 나라의 명에 의해 건립된 장생이라는 의미이다.

장생은 수호신, 이정표, 경계표 등의 구실을 하고 있어 풍수지리설과 함께 민속신앙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장생은 경계표와 보호의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선종 2년(1085)에 제작된 것으로, 나라의 통첩을 받아 세웠다는 글이 이두문이 섞인 금석문으로 새겨져 있어 국가와 사찰과의 관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통도사(通度寺) 국장생(國長生)은 4만 7천보(步)나 되는 절을 중심으로 사방 12곳에 세워진 장생표(長生標)의 하나이다.

통도사 동남 약 4.4km에 위치한 이 석표는 사찰장생의 대표적인 예로서 사찰의 경계(境界), 풍수(風水), 방액(防厄)을 위한 장생석표로서 전면의 명문(銘文)은 자경(字經) 약 5∼9cm의 음각된 이두문(吏讀文)으로 되어 있고, 형태는 거친 자연석의 전면을 막다듬하여 곧추 세운 것이다. 커다란 자연석(화강암)을 약간 다듬어 만들었으며, 높이는 1.67m, 폭은 60Cm로서 아래의 둘레는 2.2m이다.

남북으로 향한 옆면에는 철정(鐵釘)으로 거칠게 다듬은 흔적이 남아있으며, 꼭대기에는 무엇인가 매단 흔적으로 생각되는 3개의 파여진 홈이 보인다. 동쪽면 아래에는 총알 자국이 있으며, 넓적한 돌받침대 위에 남북(南北)을 옆면으로 하고, 넓적한 면을 동서로 한 이 석표가 세워져 있으며, 5m 동쪽에는 또다른 조그만 선돌이 세워져 있다. 바닥에 깔려진 받침대와 선돌에도 각각 한문(漢文)이 새겨져 있다.

석표에 쓰여진 내용(內容)은 "통도사 손내천 국장생 일좌(一座)는 절에서 문의(問議)한 바, 상서호부(尙書戶部)에서 을축년(乙丑年) 5월의 통첩(通牒)에 있는 이전의 판결(判決)과 같이 다시 세우게 하므로 이를 세운다."로서 제작연대(製作年代)는 고려(高麗) 선종(宣宗) 2년(A.D. 1085)으로 알려져있다.

비문의 내용은 "통도사 손내천 국장생 일좌(一座)는 절에서 문의한 바 상서호부(尙書戶部)에서 을축년(乙丑年) 5월의 통첩에 있는 이전의 판결과 같이 다시 세우게 하므로 이를 세운다"는 것으로 나라에서 통첩을 받아 명에 의해서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제작연대는 고려(高麗) 선종(宣宗) 2년(1085)이고 높이는 167cm, 폭은 60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