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방(圓通房)

원통방과 감로당은 화엄전, 황화각과 함께 중로전의 대방(大房)이다. 원통방과 화엄전은 법회시 대중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고종19년(1882)에 화엄전, 원통방, 감로당이 함께 소실되었고, 잇따른 화재로 1887년 덕명(德溟)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통도사사적비」에 따르면 고종 19년(1882) 화엄전에서 실화하여 원통방과 감로당이 소실(燒失)되었으나 다음 해에 중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과 4년 만에 다시 감로당에서 실화하여 명부전과 함께 원통방, 화엄전까지 소실되었고 그 다음해인 1887년 덕명대사(德溟大師)가 중건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2칸 건물로 강원의 학인 대중방으로 쓰이고 있으며 이 건물과 동, 서 그리고 남쪽에 객실 3채가 있어 口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중앙에 중정(中庭)이 생겨 주택의 평면형과 같은 구조이다. 감로당을 비롯한 口자형 건물들은 약 86칸으로 거실, 마루, 부엌, 창고, 식당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원통방과 감로당은 원래 口字형 건물이었으나 2009년 원통방과 공양간 중창으로 지금은 다소 변화되었다. 감로당 동쪽 측면에 위치한다. 초창은 1341년(충혜왕 복위 2)이지만 영조 때에 탄해대사(坦亥大師)가 중건하였고 1886년 감로당과 함께 소실되고 다음해에 매예대사(每藝大師)에 의해 중건되었다. 원통방의 ‘원통’ 의미는 ‘관음보살 이근원통(耳根圓通)’에서 유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