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전(觀音殿)

조선(1725년), 경남 유형문화재 제251호
영조 원년(1725)에 용암대사(龍岩大師)에 의하여 초창되었고, 그 이후의 중수 사실은 알지 못하며 근래에 기와를 개수(改修)한 법당이다. 건물 형태는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법당 앞에는 높이 약 3m에 달하는 석등이 있으며 조성 시기와 조각양식은 용화전 앞의 석조봉발과 비슷한 점을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내부 벽면에는 보타락가산에 계신 관세음보살에게 남순동자가 법을 묻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32응신을 상징하는 여려 모습의 관세음보살을 표현하였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픔에 “선남자야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당할 적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한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관하고 곧 해탈하게 하느니라.”라는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에서 보이듯이 관세음보살은 시방 국토에 32응신을 나투어 중생을 구제해 주는 대자대비하시고 원력이 바다와 같이 깊으신 보살이다. 관음신앙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 및 현대에 이르기까지 널리 신봉하고 있으며 다른 법댱에 비교해서 발 디딜 틈 없이 불자들이 많이 찾는 전각이다.

탱화
관음전 후불탱 관세음보살도(觀世音菩薩圖)

통도사 관음전의 후불탱화도 1858년에 조성된 것으로, 본존인 관세음보살에 비해 양 협시인 남순동자(南巡童子, 또는 善財童子)와 해상용왕(海上龍王)은 작게 그려져 관세 음보살님의 위의가 한껏 강조되어 있다. 해안고절처에 기암괴석과 반석을 배경으로 왼쪽 무릎을 세우고 백의(白衣)를 걸친 관세음보살의 머리에 쓴 보관(寶冠)에는 부처 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 부처님은 관세음보살이 본사(本師)로 삼고 항상 모신 다고 한 아미타 부처님이다. 백의는 대비의 공덕을 모두 갖추고 널리 중생을 교화함 을 상징한다. 오른쪽 아래에 합장하고 서 있는 남순동자는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근 거하여 묘사한 것이며, 왼쪽에 시립해 있는 해상용왕은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이 바다 와 같이 깊고 넓음을 증명하고 있다. 정병에는 불사(不死)의 감로수가 들어 있고 버들 가지는 어리석음과 번뇌, 미망(迷妄)을 제거하고 중생의 마음에 뿌린 보리심의 종자가 지닌 각종의 공덕을 상징한다. 청죽은 화엄법사 의상대사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청죽 의 표현은 다른 나라의 관음탱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모습이기도 하다. 관세음보살의 우측상단에는 채운(彩雲)과 함께 관음조(觀音鳥)가 날고 있으며 바다로 부터 솟아오른 기암고절처는 정교한 준법에 청록산수로 표현되어 전체적으로 회화적 분위기가 넘쳐흐르고 있다.

관음탱화는 이와 같은 도상형식을 통하여 대비삼매에 머무르며 천수천안(千手千眼)으 로 중생의 고통을 살피고 자비의 손길로 인도하시는 관세음보살님의 서원을 시각적으 로 구현하고 있다.

주련 : 관음전(觀音殿)
  • 一葉紅蓮在海東 일엽홍련재해동한떨기 홍련이 해동에 있으니
  • 碧波深處現神通 벽파심처현신통푸른 파도 속에 신통을 나투네.
  • 昨夜寶陀觀自在 작야보타관자재엊저녁 보타산의 관자재보살이
  • 今朝降赴道場中 금조강부도량중오늘아침 도량 중에 강림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