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혈석(虎血石)

스님을 사모한 처녀의 전설

먼 옛날 통도사 백운암에는 젊고 잘생긴 젊은 스님이 홀로 기거하며 수행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스님은 경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음은 물론 아침, 저녁 예불을 통해 자신의 염원을 부처님께 성심껏 기원하고 있었다. 여느때 처럼 저녁 예불을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아 경을 읽고 있었는데 아리따운 아가씨의 음성이 들려왔다. 목소리만큼 아름다운 처녀가 봄나물 가득한 바구니를 든 채 서 있는 것이었다. 나물을 캐러 나왔다가 그만 길을 잃은 처녀가 이리저리 헤매면서 길을 찾다 백운암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이 막막하던 차 불빛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달려온 처녀는, 어렵더라도 하룻밤 묵어가도록 허락하여 줄 것을 애절하게 호소하였다. 그러나 방이 하나뿐인 곳에서 수행중인 젊은 스님으로서는 매우 난처한 일이었다.

그러나 딱히 어찌할 도리가 없던 스님은 단칸방의 아랫목을 그 처녀에게 내주고 윗목에 정좌한 채 밤새 경전을 읽었다.

스님의 경 읽는 음성에 어느덧 처녀는 마음을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날 이후 처녀는 스님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고, 마음은 늘 백운암 스님에게 가 있었다. 스님을 흠모하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깊어가 마침내 처녀는 상사병을 얻게 되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좋은 혼처가 나와도 고개를 흔드는 딸의 심정을 알지 못하는 처녀의 어머니는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다가 백운암에서 만났던 젊은 스님의 이야기와 함께 이루지 못할 사랑의 아픔을 숨김없이 듣게 되었다. 생사의 기로에 선 딸의 사연을 알게 된 처녀의 부모는 자식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백운암으로 그 스님을 찾아갔다.

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한 살림 차려 줄 것을 약속하며 혼인을 애걸하여도 젊은 스님은 결심을 흩뜨리지 않고 경전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죽음에 임박한 처녀가 마지막으로 스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 하였으나 그마저 거절하고 말았다. 얼마 후 처녀는 사모하는 한을 가슴에 안은 채 목숨을 거두고 사나운 영축산 호랑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시간이 많이 지나고, 그 젊은 스님은 초지일관한 결과로 드디어 서원하던 강백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많은 학승들에게 경전을 가르치던 어느 날 강원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일며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큰 호랑이가 지붕을 넘나들며 포효하고 문을 할퀴며 점점 사나와지기 시작하였다.

호랑이의 행동을 지켜보던 대중들은 분명 스님들과 어떤 사연이 있을 거라는 데 중지를 모으고 각자 저고리를 벗어 밖으로 던졌다. 호랑이는 강백 스님의 저고리를 받더니 마구 갈기갈기 찢으며 더욱 사납게 울부짖는 것이었다. 대중들이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쳐다보자 강백 스님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속세의 인연인가 보다 하고 앞으로 나서며 합장 예경하고 호랑이가 포효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호랑이는 기다렸다는 듯 그 스님을 입으로 덥석 물고 어둠 속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음날 날이 밝자 산중의 모든 사람들은 스님을 찾아 온 산을 헤맸다. 깊은 골짜기마다 다 뒤졌으나 보이지 않던 스님은 젊은 날 공부하던 백운암 옆 등성이에 상처 하나 없이 누워 있었다. 그러나 강백 스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자세히 살펴보니 남성의 '심볼'은 보이지 않았다. 미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호랑이로 태어난 처녀는 살아생전 흠모하던 스님과 그렇게라도 연을 맺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 통도사에서는 호랑이의 혈(血)을 눌러야겠다 하여 붉은 색의 호랑이 피를 묻힌 큼직한 반석 2개를 도량 안에 놓았다. 이를 '호혈석(虎血石)' 또는 '호압석(虎壓石)'이라 부르며 상로전 응진전 바로 옆과 하로전 극락전 옆 북쪽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