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수) 수능백일기도 입재 / 8월 12일(금) 백중기도회향, 하안거해제 / 8월 15일(월) 지장재일/ 8월 21일(일) 관음재일 / 8월 27일(토) 초하루법회

서브컨덴츠 시작

언론속의통도사

언론속의 통도사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출처=현대불교] <봉축 특별인터뷰>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 대종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190회 작성일 22-05-05 15:58

본문


<봉축 특별인터뷰>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 대종사

“平常心是道의 진리는 살면서 지켜야할 상식”

역기능 많은 종정 예경실 설치 안해
전통문화 보존 발전은 내 평생의 원
‘平常心이 道’ 은사 가르침 항상새겨
선과 예술은 하나로 일맥 상통 한다


fc4bfc847cf2bd170b24bf7d2b7a40ea_1651733698_7204.jpg
 
“‘관대할 寬’ 마음 새기면 갈등 싹뚝 잘라져”

지난 3월 30일 서울 조계사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15대 종정 추대 법회가 열렸다. 법상(法床)에 오른 종정 성파 스님은 미리 준비한 법어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즉석에서 이해하기 쉬운 말로 즉설법문을 했다. “오늘을 기점으로 과거를 다 잊고 초발심으로 돌아가 새로 출발 합시다”라고. 조계종 최고 권위와 존엄을 상징하는 종정 추대 법회에서 이러한 즉석 법어는 매우 드문 일종의 파격이었다. 조계사 마당을 가득 채운 3천여 참석자들은 순간 놀랐고 즉석 법어에 웃음과 박수로 답했다.

이날 성파 스님의 법문은 초심으로 돌아가 그동안의 기억들을 싹 지워버리고 우리 마음과 가정, 사회, 국가 모두 새 출발을 한다면, 세상의 모든 갈등을 마무리하고 화합과 통합의 새 시대를 열 수 있지 않겠냐는 의미로 들렸다.

봉축을 앞둔 지난 4월 26일 종정 스님이 주석처인 양산 통도사 서운암을 찾아가 다시한번 법을 청했다. 춘화가 만발한 서운암 도량에는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는 신록과 갖가지 꽃들이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했다. 성파 스님은 대뜸 코로나로 쉽지 않았을텐데 “먼길 오느라 고생 많았다”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세상에 모두 회자된 얘기들이지만, 그래도 종정 큰스님께 육성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예술세계와 선수행담, 살아오신 인생역정까지. 그 내용들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주〉

fc4bfc847cf2bd170b24bf7d2b7a40ea_1651733728_5909.jpg

△지난 종정 취임법회 때 즉석 법문이 대중들에게 화제였습니다. 어려운 한문으로 된 선지식들의 조사어록을 일절 언급하지 않고 쉬운 일상 언어로 말씀해서 신선했다는 여론이 많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역대 종정 스님들 법어가 사회적 울림이 컸다고 저한테도 그런 반향이 있는 말이 나오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작정한 건 아닌데 현장에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우중에 오셨고, 특히 문대통령 내외도 맨 앞에 앉아 계신데 미리 쓴 것을 그냥 형식적으로 읽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그래서 나오는 대로 말한 거지 다른 뜻은 없어요. 어렵다 쉽다로 언어를 굳이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쉽게 가르치고 말해도 모르면 어려운 것이고, 또 어렵다는 것도 알고 나면 쉬운 겁니다. 사과로 유명한 충주 것도 먹어보고 청송 것도 먹어봐야 사과라는 것인 줄 알게 되잖아요? 사과란 과일의 존재를 알면 그만이지, 맛이 어떻다 당도가 어떻다 굳이 따질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즉석에서 제가 한 법문도 쉽고 좋고 신선하다고 겉만 평하지 말고, 그 의미나 뜻을 알고 실천하면 그게 좋은 법문입니다. 이 세상서 가장 훌륭한 법문은 그 법문이 끝난 뒤의 행동에 있는 겁니다. 말에 끄달리기 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고 보여주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종정 임기를 시작하신 지 이제 어느덧 한달 정도 됐는데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지요?

=예나 지금이나 똑같죠. 코로나로 위험한 상황인데도 찾아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하고 이야기 하다보면 시간이 빠르게 흐르죠. 우선 새벽에 일어나서 예불하고 공양하고 대중 스님들 만나서 사중 이야기도 듣고요. 공식 일정이 잡혀 있으면 참석하고, 시간 남으면 거의 작업실에 올라와서 계속 작업을 합니다. 종정 됐다고 달라진 거라면 사람들 만나는 횟수가 좀 늘어난 것 이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수행자가 정치가도 아닌데 달라질 것이 뭐 있겠습니까? 평소 생활하는 그대로 사는 것이지 특별히 격식을 차리고 싶지 않아요. 봉축 법어도 평소 생각하던 걸 말했지 특별한 게 없습니다.

fc4bfc847cf2bd170b24bf7d2b7a40ea_1651733760_1539.jpg
16만 도자대장경과 장경각을 10여 년에 걸쳐 조성한 성파 스님이 도자대장경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례적으로 종정예경실을 꾸리지 않아서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때론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일반 사회에서는 비서실이 있고 비서실장이 있다고 하는데 조계종은 종교단체이니 예경실, 예경실장이라고 직함을 주고 사서가 있어 종정을 돕는 역할을 합니다. 제가 다른 곳에 거처하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통도사에 살고 있기에 본사가 있습니다. 그러니 필요하면 본사 주지가 예경실장 역할 하면 되고, 또 사중 스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되지요. 굳이 번거롭게 별도의 조직이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예로 봐도 예경실도 또하나의 권력으로 승화될 수 있어 순기능 보다는 역기능이 많다고 봅니다.

△서운암에 들어서니 장을 담근 수백개의 항아리들이 장관입니다. 1980년대부터 버려진 장독을 수집해 간장, 된장을 담그신 걸로 아는데요. 이런 만행(?)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란 말이 있지요. 강원과 선원에서 제 나름대로 열심히 소임을 살았으니 이젠 다른 방향 즉 전통을 되살려보자는 쪽으로 만행을 해보자는 생각이들었습니다. 그러던중 1970년대 말 우리나라의 주거 문화가 아파트로 바뀌면서 주택가 골목마다 항아리가 넘쳐 났어요. 청자 백자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전통 옹기 항아리는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우리민족 생활문화의 정수인데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고물상을 찾아다니며 50년 이상 된 항아리를 모아달라고 부탁해서 모은게 5천개가 넘더라구요. 그때는 그 항아리로 특별히 뭘 하겠다는 계획이 없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항아리 덕을 톡톡히 봤죠. 1980년대 초반 부산을 시작으로 일본의 간장과 된장이 상륙했어요. 아파트에서 직접 담가 먹지 못하니 일본 제품이 마구 들어온 거죠. 우리가 왜정 때 그 고생을 했는데, 된장까지 일본 것을 먹어서야 되겠나 싶었지요. 그래서 그동안 수집한 항아리에 전통 방법으로 된장과 간장을 담가 보급 했습니다. 매스컴에서 소개되니까 전국서 전통 장 담그던 분들이 다시 만들어 보급하더라구요. 그 덕에 왜간장, 왜된장은 물러갔지요.

fc4bfc847cf2bd170b24bf7d2b7a40ea_1651733813_7007.jpg
성파 스님은 지난해부터 울주 반구대암각화를 실물 크기의 나전 옻칠로 제작해 통도사 서운암 장경각 앞 수조에 담가 선보였다. 사진은 반구대암각화 앞에 선 성파 스님.


△사찰의 전통옻칠을 복원하는 등 전통문화 보존과 발전에 힘쓰시는 이유가 있으시다면요.

=사실 사찰 문화에는 우리 전통 문화의 보고가 다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는 삶 자체가 바로 전퉁 문화인 셈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전통문화를 연구 복원하고 시대에 맞게 발전시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이 시대에 불교가 나라를 지키는 시대적 소명인 것입니다.

출가 초기부터 그런 정신으로 살았죠. <초발심자경문〉에 이런 말이 있어요. ‘사음수성독(蛇飮水成毒) 우음수성유(牛飮水成乳)’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즉슨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는 것이고,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는 거란 의미죠. 바로 그겁니다. 수행자에겐 옻칠 작품을 만들던 울력을 하든 그 모든 게 수행인 겁니다. 전통문화 보존 발전도 그런 차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옻칠 문화를 계승할 후학 스님들이 없어 좀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향후에는 우리나라 글인 한글을 연구하는 데에도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몇년 전부터 ‘책 모으기’ 운동을 벌이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얼핏 들으면 수행하는 것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책은 인류의 지식들이 총 망라된 보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핸드폰 등 첨단 기기들에 밀려서 책을 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책이 필요한 때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50만권 조금 안되게 모았는데 어느 정도 모이면 종류별로 나누고 분류해서 통도사 경내 곳곳에 서 언제든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게 남은 원입니다. 물론 앞으로의 미래는 IT와 기술 문명 시대가 지속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의 정신문화는 빈곤과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죠. 이는 약으로 절대 안 고쳐집니다. 마음을 바로 닦아 자기본래의 참나를 찾는길 이외엔 별다른 치유 방법이 없습니다. 기술 문명에만 의지한다면 인간의 마음은 고저가 생겨나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힘듭니다. 그럴때 독서도 그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즉 책은 미래를 대비하는 비밀병기인 셈이죠. 제가 책을 많이 모아 놓으면, 그 책들을 후학들이 유용하게 여러 사람들에게 사용되도록 노력할 거라 믿습니다.

fc4bfc847cf2bd170b24bf7d2b7a40ea_1651733856_8437.jpg
 
△은사이신 월하 스님도 ‘평상심이 도(道)’라는 걸 많이 강조하셨다는데요. 은사 스님은 어떤 의미로 그 말씀을 평소에 강조하셨는지요?

=우리 은사 스님께선 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말씀하셨어요. ‘평상심이 도’인데 그걸 벗어나지 않으면 중노릇 잘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상식이 바로 도이자 법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본분을 잘 지키라는 경책이셨죠. 저는 무슨일을 하든지 수행자로서 평생 그 교훈을 지키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생과 부처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부처에서 부처가 나오는 게 아닙니다. 중생심에서 부처의 마음이 나오는 거죠. 그러니 범부와 부처가 둘이 아닌 이치죠. 바로 그걸 깨달으면 평상심이 도가 된다는 말입니다. 어렵나요?(웃음)

△종정 스님께서는 수행자인 동시에 예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16만 도자대장경과 장경각을 10여 년에 걸쳐 조성하셨고, 지난해부터는 울주 반구대암각화를 실물 크기의 나전옻칠로 제작해 장경각 앞 수조에 담가 선보이셨습니다. 이렇듯 선예(禪藝) 일치의 경지를 보여주신 셈인데요. 선과 예술은 어떤 점에서 일맥 상통하는지요.

=일과 수행, 삶과 예술, 자연과 문화가 결코 둘이 아니듯 선과 예술도 역시 둘이 아닙니다. 붓을 잡는 순간,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참선과 수행으로 마음을 비우고 맑은 기운을 그림에 배어들게 해야 하죠. 그래야만 보는 이로 하여금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기(禪氣)가 없는 불화(禪畵)는 선화가 아닙니다. 그냥 그리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불교 수행 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에 선과 예술은 일맥 상통한 것이죠.

수행자가 그림을 그리는 목적은 일반인들과 다릅니다. 무념과 무아, 즉 선을 이루기 위한 것이죠. 그림 속에 나를 투영해 나를 잊는 만큼 그림을 통해 무념과 무아가 드러나기 때문에 붓을 잡는 것 자체가 수행인 동시에 포교인 것입니다.

△대선 후 정치적 갈등이 더욱더 극에 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갈등을 봉합시키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될까요?

=세계 어느 나라든지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자중지란(自中之亂)’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제자들 간에 갈등이 많았어요.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갈등을 넘어섰습니다. 넓은 마음이 극복하신 비결이죠. ‘소선난감중재(小船難堪重載)’라는 말처럼 작는 배로는 무거운 짐을 못싣고 다닙니다. 호연지기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사실 누구와 시비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의견이 안 맞을 땐 부딪히고 싸울 일도 많았지만 전 안 싸웠어요. 때론 좀 비겁해 보일수도 있겠지만, 부딪히고 싸우고 이기려고 하는 게 더 힘들지 참는 건 오히려 힘들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통도사 주지 시절 오해로 저를 몰아내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 비결은 관대할 관(寬) 글자를 마음에 깊이 새겼기 때문이죠. 그거 하나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멋집니까? 자기는 물론 타인들에게 너그럽고 관대해 질 수 있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깨달음이요 수행의 결실 아니겠습니까? 타인과의 갈등에 봉착할때마다 그 산을 넘는 비결인 ‘관대할 관’글자를 마음에 되뇌이세요. 그러면 행복의 미소가 절로 쏟아져 나옵니다. (웃음)

fc4bfc847cf2bd170b24bf7d2b7a40ea_1651733883_1335.jpg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는…성파 스님은 1939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통도사에서 출가했다.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5학년때 6.25전쟁이 터졌다.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게 되자 서당에서 명심보감과 사서삼경 등의 한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마음의 실체가 궁금해 1960년 통도사로 출가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월하 스님(1915~2003)이 은사다. 1970년 월하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고 1971년 통도사 승가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1975년 경북 봉암사 태고선원에서 첫 안거에 든 이래 26안거를 선방에서 지냈다.통도사 주지, 제5와 8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교무부장과 사회부장을 역임했다. 2013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선출됐으며, 2014년에는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받았다. 성파 스님은 전통 옻칠을 개발해 한국의 전통 민화를 되살렸다. 고려와 조선의 모든 불화를 옻칠로 제작했다. 장장 10년에 걸쳐 650t에 달하는 도자기를 구워서 팔만대장경판을 만들었다. 이는 현재 통도사 서운암 장경각에 모셔놓았다. 또한 2018년부터는 영축총림 방장으로서 총림을 이끌고 있으며, 지난 3월 26일에는 조계종 제 15대 종정으로 추대되었다. 임기는 5년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텔레그램 보내기
  • 텀블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