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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현대불교]"6.25전쟁 당시 육군병원 통도사에 입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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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146회 작성일 21-06-0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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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육군병원 통도사에 입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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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전투에서 다리에 관통상과 팔에 파편상 그리고 귀를 다쳐 1951년 여름 경 31육군병원 통도사(정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통도사에 갔더니 스님들은 다른 곳에 옮겨놓고 환자들만 있었습니다. 통도사 정양원 분위기는 무겁고 어두

웠습니다. 중상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통도사(31육군병원 정양원)에 입원한 유창수(94)어르신이 ‘31육군병원 정양원’이 실재했음을 증언했다.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현문)는 6월8일 유창수 어르신의 증언을 청취한 31육군병원 증언 자료를 공개했다.

유창수 어르신은 6·25 한국전쟁 발발 1년 전인 1949년 입대했다. 영덕전투에서 부상 당해 31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정양원)

에 입원해 3개월 정도 정양을 마친 후 전투 불능상태로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839부대에서 전역했다. 면담에는 통도사 

기획국장 지범 스님, 기획과장 혜덕 스님, 총무과장 정대 스님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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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수 어르신은 “내가 거처한 방도 알고 있다. 내가 거처한 방에서 대웅전까지 100미터도 안됐다”며 “한방에 보통 

4~5명씩 들어갔다. 당시에 공비가 통도사에 많이 내려와서 보초들이 항상 서 있었다”고 증언했다.

유창수 어르신의 조카 박동철씨는 “10년 전 통도사에 모시고 방문했을 때 대광명전 법당에 들어가 한참 후 법당을 

나와서 ‘여기서 사람이 많이 죽어나갔다’고 많이 우셨다”고 증언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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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는 한국전쟁 당시 통도사에 입원해 사망한 호국영령을 위로하고 국가 위기 상황에 호국사찰로 역할을 다한 

불교의 위상을 널리 알린다는 의지이다.

이를 위해 통도사는 6월 1일 용화전에 백옥 미륵부처님을 봉안했다. <미륵하생경>에 나오는 56억 7000만년 뒤 

용화세계가 실현되고 미륵 부처님이 강림한다는 의미를 담아 1000만년을 한분의 미륵 부처님으로 상징화해 

567미륵불을 모셨다. 통도사가 육군병원 분원으로 사용됐다는 최초 증언이 용화전 불상 속 연기문을 통해서 

확인 된 바 있어 의미가 크다. 당대 구하 스님이 쓴 연기문으로 국군 상이용사 3000여명이 입사 후 퇴거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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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기획국장 지범 스님은 “6월 8일 방장 스님께 한국전쟁 당시 통도사 정양원에 입원한 군인 가족들이 방문했었다. 

학도병으로 입대해 전사한 군인의 가족이었다. 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호국정신을 기려야 한다”며 “통도사는 신속하게

 호국 현충시설로 인정받아 호국영령을 위한 위령재 등을 봉행해 순국선열과 가족들을 위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울산 보훈처 보훈선양팀은 “통도사 현충시설 지정을 위해 6월 4일 국가보훈처 현충시설과로 심의 자료를 보냈다”며

“현충시설 심의위원회 회의 후 결정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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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현대불교 = 하성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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