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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불교신문] "31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에 입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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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120회 작성일 21-06-0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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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에 입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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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통도사에 설치된 31육군병원(정양원)의 실체를 증명하는 증언이 나왔다.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현문스님)는 
5월31일 경남 합천군에 거주하는 유창수(94세) 어르신에게 직접 청취한 31육군병원 증언을 공개했다.

통도사 육군병원의 실상을 증언한 유창수 어르신은 1949년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3사단 23연대 1대대)하여 영덕전투에서 
부상 당해 5육군병원을 거쳐 31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정양원)에 후송된 후 전역했다. 1951년 여름 31육군병원 통도사 분원
(정양원)에 입소하여 3개월 정도 정양한 후 ‘전투 불능상태’로 판정 받아 1951년 839부대가 있는 경남여고로 이동해 제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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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총림 통도사는 한국전쟁 당시 31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의 실체를 확인하는 자료를 수집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31일 통도사 기획국장 지범스님 
등이 경남 합천에서 유창수 어르신의 증언을 청취하는 모습이다.

유창수 어르신은 통도사 스님들을 만난 자리에서 “5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재복무 능력이 있으면 다시 전쟁에 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정양원으로 가는데, 그곳이 바로 통도사였다”면서 “통도사에 갔더니 스님들은 다른 데로 옮겨놓고 환자들만 있었다”고 
회고했다.

처음에는 대웅전에서 100미터가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방에 거처했으며, 그 뒤에는 4~5명이 사용하는 방으로 옮겨 지냈다고 한다.
두 번째 거처는 통도사 감로당 인근 방으로 추정된다. 이때 함께 방을 사용한 최재봉 이등상사의 이름도 기억했다.

유창수 어르신은 “당시에 통도사에 공비가 많이 내려와 항상 보초들이 서 있었다”면서 “우리는 환자들이니까 정양하고 다른 군인들
이 보초를 섰다”고 회고했다. 중상 환자들이 많아 분위기가 무겁고 어두웠으며, 환자들 일부는 불상에 올라가기도 했다고 한다. “심
하게 다친 환자들이 많아 서로 기피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도 나는 거동이 힘들기는 했지만 통도사 안을 자주 산책하며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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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839부대 제1대대가 1951년 9월 5일 발간한 '제9차 상이군인명예재대장명부'에 실린 유창수 어르신(붉은색 표시).
계급, 성명, 본적, 현주소 등이 게재되었다.


유창수 어르신의 조카 박동철씨는 ”10년 전 통도사에 모시고 갔을 때 대광명전 법당을 참배하고 나와 ‘여기서 사람이 많이 죽어나
갔다’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증언했다.

통도사 기획국장 스님은 “고령으로 상세한 묘사는 힘든 상황이지만, 31육군병원 통도사 분원(정양원)이 있었다는 확실한 증언과 
입원 시기, 전역 당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날 면담에는 통도사 기획국장 지범스님, 기획과장 혜덕스님, 총무과장 정대스님이 참여해 유창수 어르신의 증언을 청취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통도사는 앞으로도 관련 증언을 청취하는 후속작업에 더욱 속도를 내서 31육군병원의 실체를 낼 예정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공개된 유창수 어르신의 생생한 증언은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앞장선 통도사는 물론 한국불교의 호국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이성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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