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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시절 이야기

울산 백양사 주지 명본스님이 들려준 아주 짧은 행자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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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391회 작성일 18-06-0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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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모두 출가 사문의 길 걷다

 

울산 백양사 주지 명본스님이 들려준 아주 짧은 행자시절

 

퍼즐을 맞추기라도 하듯, 펼쳐놓고 꿰맞추다보면 부지불식간에 무릎을 치는 순간이 있다.

한참의 시가이 흐른 뒤라도 그렇듯 알아채는 무언가 있어 조합을 해보면 툭 터지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때가 있다.

 

명본스님(울산 백양사주지)이 그렇다. 소의 말해 행정에 능숙할 것으로 봐지는 스님임에도 묵은 '중맛'이 느껴지는

것이 웬만한 한주급 이상의 스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돼보이는  묵은 맛, 족히 30년은 돼보이는 숭랍 등

그렇게 출세간의 시간이 가늠되는 것이 마치 한두 생 정도는 어느 곳에서 거뜬히 살고 왔음직한 외양이 그러하다

 

명본스님은 경남 남해가 고향이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바다소년이었기에 물으로 나오는 일은 바로 출세가도를

달리는 일만 같았고 안전망을 구축해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랬으니 일찍이 출간한 큰 형을 따라 부산 어느

사찰로의 여정을 꾸리는 일도 소년에게는 설레는 일이었다. 그렇게 명본스님의 출가로의 출발은 자연스러웠다.

 큰형의 출가는 명본스님뿐아니라 네형제를 출가자의 길로 이끈 도화선이 되었고 4형제가 조계종 승려라는 크나 큰

기록 하나 남기는 일이 된 셈이다. 그랬으니 어느 한구석에서라도 중맛을 배제하고 살아갈수 없는 승려의 모습이

명본스님에게서는 담뿍 베어 있었던 것이다.

 

명본스님에게 행자시절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조금의 과장을 보태 복권 당천이나 한가지다.

그 또한 기록에 남을 만큼 극히 짧은 행자시절을 거쳤으므로 여간해 '행자시절' 얘기를 꺼내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내로라 할 것이 없다는 얘기 였다. 소위 속성 행자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를 한달처럼 살았던 것은 자명하다. 국을 끓이고 밥을 짓고 나물 무치고를 하루처럼 해냈다. .오롯이 집중에 집중을기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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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이 머물던 부산의 보현사에서 어린 소년은 3년을 살았다.

부처님 품안이 어렵거나 힘들다는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고 더는 머리 깎으면 바로 스님이 되는 줄로만 알았던 시절이었다.

성장한 소년은 불교 종립학교인 동국대에 입학을 했고 곧바로 은사스님의 부름을 받고 통도사로 내려와 일주일간의 행자생활을 했던 것이다.

 

혜원, 지범, 각광스님 등이 당시 4월행자들의 명단이다. 짧지만 너무도 분명했던 스물 네 시간의 날들이었다.

도반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행자도반들이었다.

한 둘만 빼고 모두 형뻘에 속하는 세속의 선배들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열 다섯 명 정도에 이르는 숫자였고 모두는 스님이 된다는

기대감 속에서 절집 살림살이를 익혀가는 중이었고 한 없이 깊고 끈끈했다. 그랬으니 짧은 일주일을 후원에서 보냈다고 하여

누구 한 사람 차별 대우를 하는 일이 없었고 마치 수개월을 함께 한 지기들과 같았다.

물론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과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큰형, 작은형이 스님이라는 자부심이 그랬을 테고 뒤 이어 출가자의 길을 선택한 동생까지

명본스님에게는 천군만마였을 것이다. 그렇게 명본스님에게 행자시절은 '달 쌉싸름 한 ' 최상의 날들이었다고. 

 

생에서 가장 짧은 행자생활을 끝내고 명본스님은 다시 동국대로 북귀하여 4년 학부생활을 마치는데 그것은 또 다른 출발을 예고 했다.

짧은 행자생활이었다면 비로소 정석의 강원생활을 밟아야 했다. 1987년의 동국대 학번을 지닌 명본스님이었지만 출가승으로서

발을 디딘 통도사 도량은 인재들로 넘실댔다.속가 큰형 뻘의 스님들이 강원 상급반이었고 태암과 지금은 고인이 된 희문, 지종스님 등이 명본스님의

강원도반들이었다. 당시 전승련을 만든 주인공 역시 그때의 도반 희문스님이 자처했고 승가로서의 자부심 역시 최고조에 달하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도반이 공부시킨다 라는 말은 어쩌면 명본스님이 구성원이었던 다시의 풍경에 어울리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뒤처지지 않는 않는 승려로서의 정신만큼은 확고했고 승단의 풍모 또한 살아잇었기에 30년을 지나온 과거시간이 그리움으로 점철되기도 하는 것이다.

 

종단의 여러 소임을 맡았던 이력 또한 달리 기인한 것은 아닌 셈이었다. 두루거친 소임들에서 이젠 울산 불교를 선도해 나갈 백양사의 주지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명본스님이다.

혁신도시 울산 성안지역에서 수문장 역활을 하는 백양사는 지금의 사격을 조성해놓은 목산 지은 스님의 원력이 고스란히 담긴 사찰이다.

이젠 명본스님이 주축이 되어 환원하는 종교기관의 모범사례를 만들고자 하고 있으며 템플스테이관 복지관 등 지역민들을 위하여 사회참여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명본스님에게 백양사는 '깎값'-깎은 값-을 하는 도량으로 성숙의 시간을 노리고 있는 중이다.

오랜전 그렇듯 '깎값'을 하라시며 승려 본연의 모습에 철저해 줄 것을 당부하셨던 은사 법산스님의 지침을 날마다 새기는 상좌 명본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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